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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음의 한때 그의 책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그에게 푹 빠진 적이 있었다.
젊음의 한때 시인 아닌 사람이 있을 것이며 철학자 아닌 젊음이 있을 것인가?
켜켜이 묵은 밤에 알알이 박혀 오는 고독.
그 고독에 때로는 괴로워하고 때로는 고독을 즐거워하며 그렇게 보낸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릴케의 가을날의 시를 읽어보자.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익게 하시고
이클만 더 남국의 햇빛을 베푸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도 고독하게 살면서
밤새워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러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면 불안 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멜 것입니다.
신을 향한 시인의 바람을 들어보자.
그저 이틀만 더 햇빛을 허락해 달라는 것뿐이다.
이 얼마나 소박한 소원인가?
나는 이런 소박한 소원을 가질 만큼 순수함을 유지하고 있는가?
릴케의 위대함은 그가 위대한 시인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소박한 소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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